5 Nov 검란과 신언패
Source : 한국경제 [천자 칼럼] 검란과 신언패 권력자나 윗사람 치고 비판의 목소리를 고깝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고언(苦言)에 귀를 닫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제도적으로 차단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광군(狂君)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연산군은 언로의 통제가 유독 심했다. 연산군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사를 파악하기 위해 주요 사안에서 재상들이 제시한 의견을 초록으로 따로 작성해 보고토록 했다. 입관한 내관과 승지, 사관의 이름을 모두 적도록 해 발언자를 색출할 근거를 마련했다. 그는 “나라가 평안한데도 대간(臺諫·감찰관 및 간관)이 상소를 자주 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며 그래도 아뢸 일이 있으면 연유와 성명을 미리 밝히고, 입궐한 횟수까지 보고토록 했다. 압권은 ‘신언패(愼言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