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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 죽음은 '사회적 살인'이다

category 필사 2018. 12. 21. 09:46

Source : [시시비비] 김용균씨 죽음은 '사회적 살인'이다


작가 조세희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사회의 그늘을 선명하게 그려낸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으니 말이다. 한데 100쇄를 훌쩍 넘긴 초 스테디셀러인 이 작품을 쓴 그는 과작(寡作)이다. 치열한 작가정신을 비춰 보면 1990년대 이후에도 그가 '발언'은 그치지 않을 법한데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신작을 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작품 중 '침묵의 뿌리(열화당)'가 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광부와 그 가족들이 벌였던 노동항쟁, 이른바 '사북사태'를 다룬 책이다. 1985년 출간된 이 책은 묘하다. 단편소설도 들어있고, 현지 어린이 글도 담겼고 무엇보다 책의 절반가량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어 그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 소설집이라기엔 지어낸 것이 아니고, 르포라 하기엔 감성적이며, 에세이치고는 현실참여적이다. 작가가 항쟁이 벌어진 지 4년 후에 현장을 찾아 '기록'한 이 책은 먹먹하고 의미심장하다. 거기 나오는 구절이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용균씨의 죽음과 관련된 뉴스들을 접하다가 기억을 되살려 발견한 구절이다. 24세 청년. 입사 3개월 만에 불과 사흘간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 비정규직. 그는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중 몸이 끼어 숨졌다.

위험한 작업환경인 만큼 2인1조 근무를 요청했지만 발전소 측은 거부했다고 한다. 탄가루가 날리는 어두운 공간을 3~4㎞ 걷는 업무인데도 헤드랜턴은 구경도 못했다. 휴대전화 조명으로 작업을 했다 한다. 회사에서 지급한 손전등을 분실했지만 추가 신청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자비로 손전등을 샀단다. 그마저도 고장 났다던가. 이 밖에 그의 유품으로는 근무시간에 쫓겨 식사대용으로 먹곤 했다는 컵라면 몇 개, 탄가루가 밴 작업복 정도가 다였다. 비용 절감을 앞세운 안전 불감증, 요즘 표현으로는 '위험 외주화'에 몰려 그렇게 한 꽃다운 청춘이 졌다.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측이 사고 직후 경찰에 알리기 전 관련자들의 입막음에 먼저 나섰다는 이야기는 차마 듣지 못할 지경이다. 2인1조 작업 실시 등 정부가 당장 내놓은 '대책'이란 것도 민망하다. 현재 조건이라면 노동자들의 업무량만 늘리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란 비판이 타당해보여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 지난해 12월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한 선언이다.

이에 앞서 2016년 5월 지하철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19세 청년이 숨진 '구의역 사고' 이후 비정규직 안전문제를 놓고 온 사회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부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1월 국회에 송부했다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데서도 이런 무관심은 여실히 드러난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다. 자연재해나 한순간 부주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정치권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방관하는 사이에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구조적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오는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용균씨 추모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거기 참석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고.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Source : [아침 햇발]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 그 새벽, 김용균씨의 시신이 채 수습되기 전 점검을 위해 세워져있던 1m 옆 컨베이어벨트는 80분을 더 돌았다. 그 아침, 회사는 김씨의 현장 ‘사수’에게 전화 걸어 ‘후배들 입단속 잘하라’고 당부했다. # “수리하다 옥상에서 떨어져 연락하면 관리자들은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래, 내일은 출근할 수 있냐부터 물어요.” 전원 직고용을 요구하며 단식하던 엘지유플러스 수리기사 두명은 한겨울 철탑에 올랐다. 김용균씨 추모문화제가 열린 지난 13일 광화문광장엔 발전소 동료, 수리기사, 기간제 교사의 발언과 “비정규직 없애자” 구호가 이어졌다. 발끝이 저린 추위보다 마음을 시리게 한 건 현실과의 아득한 간극이었다. 비정한 지시를 한 이들도 개인적으론 따뜻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런 사태의 원인과 근본대책 또한 우린 알고 있다. 그런데 제자리다. “참담했어요. 2인1조가 지켜지지 않은 거나, 우리가 시킨 게 아니라는 처음 회사의 해명이나 똑같아요.” 구의역 사고 당시 19살 김군과 은성피에스디 동료였던 ㄱ씨의 전화 너머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산재가 하청노동자에게만, 청년에게만 닥치는 건 아니다. 정부 통계에서 사고사망자 중 하청노동자는 2016년 기준 42.5%(50인 미만 사업장은 72%)다. 문제는 외주화가 급증하며 그 비중이 느는데 개선의 여지는 없다는 점이다. 비용 절감이 곧 경쟁력인 하청업체에서 경험 적은 젊은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따위는 비현실적 얘기다. 김씨와 동료들은 수천t 컨베이어벨트 아래 수십㎝ 공간에 수시로 들어가 낙탄을 제거하면서도 2인1조는커녕 전등 하나 더 달 수 없었다. “정규직 안 해도 좋다. 죽지만 않게 해달라”는 절규가 역설적으로 상징하듯, 고용안정과 ‘안전’은 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 경력도 군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 ‘7급보’지만,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이 된 ㄱ씨의 얘기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를 묻자 “2인1조가 아니면 일이 아예 배정되지 않고 현장에서 역무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을 꼽았다. 대단한 변화처럼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순간의 ‘나 혼자’ 판단으로 목숨이 오가던 위험한 현장에서 물 흐르는 듯한 소통과 협력이 가능해진 것은 소중한 일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그들은 200개 역의 안전문 고장 패턴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책임감과 소속감이 커진 덕일 게다. 장비 도입도 큰몫했지만, 지하철 안전문 고장은 2016년 6657건에서 올해는 11월말 3250건으로 줄었다. 거센 ‘고용비리’ 논란에 비해 이런 현장의 변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회가 원청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의 내주 통과를 다짐하고 당정이 발전5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기로 하는 등 청년의 죽음 앞에서 나태했던 정치권도 마침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구의역 이후 2년여 세월에서 보듯, 이 분노와 슬픔의 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기업들 손목만 비튼다’ 같은 주장이 고개 들지, 정규직 전환에 ‘청년 일자리 빼앗기’나 ‘무임승차’ 같은 프레임이 씌워질지 모를 일이다.

이번만큼은 ‘안전’을 위해 무엇이 우선인가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실질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해소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놓고 해당기관과 당사자들의 혼란이 컸던 만큼, 발전5사 문제를 넘어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내 파이는 못 준다’는 정규직의 욕망도 ‘전원 직고용이 아니면 기만’이라는 비정규직의 조급함도 조금은 내려놨으면 한다. 양대 노총이 정규직 중심주의를 벗는 건 그 전제다. 다만 업종여건 등으로 자회사 전환이 불가피하다면, 대신 모회사 수준의 고용안정성과 노동조건을 보장받는 현실적 감각도 배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갈등 많고 험난할 이 과정을 끝까지 추동할 힘은 “네 탓이 아니야” 포스트잇을 구의역에 붙였던 시민들이 그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일 게다. ㄱ씨는 말했다. “이젠 제발 ‘공부 못해 비정규직 돼 당하는 것’ 같은 표현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침 햇발]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 김영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5236.html#csidx9fc56909d1fe28fb1e5131a9a759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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