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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Oct 천재지변에 우는 일본

category 필사 2019. 10. 15. 14:17

Souce : 한국경제 [천자 칼럼] 천재지변에 우는 일본

일본에는 ‘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이 무서워하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1~3위를 지진, 번개, 화재가 차지한 데서 천재지변에 대한 일본인의 두려움이 읽힌다. 보름 전 세계경제포럼(WEF)의 ‘각국 기업인들의 최대 걱정’ 조사에서도 일본은 기상이변을 꼽았다. 한국이 ‘실업’, 미국이 ‘해킹’을 꼽은 것과 대비된다.

일본인에게 재해는 숙명과도 같다. 전 세계 진도 6.0 이상 지진의 20% 정도가 일본 열도에서 발생한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도 수시로 지진·여진 경보가 울리고, 몇 분 뒤 온몸에 진동이 전해지면 두려움을 피해갈 방도가 없다.

화산 분화도 진행형이다. 활화산이 86개로 전 세계의 10%선이다. 일본의 상징 후지산 내부도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 1707년에 마지막으로 터진 이후 300여 년 동안 분화기록이 없지만 “재분화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많다.

큰 피해를 주는 재해로 연 평균 27개씩 찾아오는 태풍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사라호 매미 등의 악명이 높지만, 일본 태풍은 훨씬 치명적인 피해를 줄 때가 많다. 12~13일 일본열도를 강타한 ‘하기비스’도 열도에 ‘공포의 1박2일’을 남기고 떠났다. 한 해 강수량의 30~40%를 하루이틀 만에 쏟아냈다. ‘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각자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던 재해당국의 비장한 경보가 불행히도 들어맞았다.

숙명과도 같은 재해를 원망만 하기보다 예술로 승화시킨 데서 일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1760~1849)가 그려 일본의 상징이 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태풍의 단골진로인 가나가와 앞바다의 거친 파도를 포착해낸 것이다. 이번에 하기비스가 10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를 남기고 떠난 곳의 바로 그 바다이다. 자연의 시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극복해나가는 일본의 정신을 형상화한 이 그림은 유럽으로 건너가 인상파를 태동시키고 자포니즘을 만들어냈다.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신국(神國)’으로 인식하는 것도 재해와 더불어 사는 삶에서 비롯됐다. 13세기 두 차례나 침범한 몽고의 대군이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에 휩쓸려 상륙하지 못하자 ‘신이 지켜주는 나라’라는 의식이 태동했다. 천재지변에도 줄서기를 잊지 않는 ‘질서의 일본’이 태풍 하기비스도 툭툭 털고 평상으로 돌아오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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