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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한국경제 [세계의 창] 헤이세이 30년, 질서와 협력의 일본을 보라


요즘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헤이세이(平成)의 마지막’이란 수식어다. ‘헤이세이’는 1989년 현 일왕(천황)이 즉위하면서 사용한 연호(年號·주로 겐고(元號)라 함)다. 보통은 천황이 사망하고 나서 다음 대로 승계되지만, 이번에는 현 천황이 양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는 5월부터 황태자가 새로이 즉위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새 시대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헤이세이 시대가 30년으로 마감하게 되니 ‘헤이세이의 마지막’이라 함은 한 세대에 걸친 기간을 돌이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1989년은 일본이 거품경제의 절정에 있던 시기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던 때였다. 그러다가 1991년 거품경제 붕괴 이후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잃어버린 시기’로 접어들었다. 거품경제기(1985~1990)의 평균 경제(실질GDP)성장률은 5.3%로 상당히 높았으나 거품 붕괴 이후(1991~2017)는 1.0%로 내려앉았다(일본 내각부 자료). 헤이세이 기간에 일본과 한국의 소득(1인당 GDP) 격차도 1989년 4.3배에서 2017년 1.3배로 크게 좁혀졌다(내각부 및 한국은행 자료). 이에 따라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한국은 높아져왔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을 금방 따라잡고 국격이 앞설 것으로 본다면 성급한 진단이다. 축적된 지식, 기술, 자본, 제도, 질서 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조현욱 옮김, 165~166쪽). 일본의 천황제는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질서로서 작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정치가 또는 정당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편이지만, 헤이세이 천황은 국회나 내각을 넘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연결되는 ‘상징’으로 자리잡아왔다. 중세 이후 일본 조정(천황)은 제사의례·율령권을 갖고, 무사정권의 중추였던 바쿠후(幕府)는 행정·사법권을 갖는 일종의 이권(二權)분립이었다(이자야 벤더슨 《일본인과 유대인》, 74쪽). 그 후 메이지(明治) 유신(1868년)으로 무사정권은 막을 내렸고, 1885년부터 지금까지 실질적인 통치체제로 내각책임제를 취하면서 천황제를 유지해왔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통치 형태였던 왕조 체제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무너졌고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헤이세이 기간(1989~2019)의 한국은 민주화(1987년 6월) 이후 시기에 해당한다. 민주화를 이뤘다고는 하나 믿음을 잃은 정치의 힘만으로, 또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구호만으로 구성원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포용 없는 편가르기’로 치달을 때 이를 봉합할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질서 유지 기제(機制)가 결여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헤이세이 천황은 질서 유지 및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총괄할 수 있겠다. 한국에도 단군신화가 있다고는 하나 일본 천황제와 같은 ‘상징’으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 헤이세이 시대를 일본에서 지켜보면서 한국이 혼란과 분열을 극복하고 질서 유지 및 상호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가 향후 한국의 큰 숙제가 되리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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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을 베껴쓰기 하면서 최근 한일관계 악화에 기름을 퍼 부은 뉴스거리 한 토막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 냈을 때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새로운 앞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러 소식을 통해 접하는 그들은 이런 기회를 전혀 원하지 않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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