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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an 중국식 과장법

category 필사 2019. 1. 20. 14:41

Source : 한국경제 [천자칼럼] 중국식 과장법


대붕(大鵬)은 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다. 9만 리면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다. 얼마나 큰지, 날개를 펴면 구름과 같다고 했다. 태풍을 타고 비상하면 물결은 3000리나 튀는 데다 6개월을 날아야 한 번 쉰다니 크기도 역량도 쉽게 가늠이 가지 않는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에 이렇게 묘사된 대붕은 웅지와 큰 인물의 의미로도 쓰인다.

철학·사상서만이 아니다. 중국의 고전 문학에도 과장이 적지 않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은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근심 속에 긴 흰머리와 함께 덧없는 늙음을 한탄한 시, 추포가(秋浦歌)의 한 구절이다. 1장(丈)이 10자(尺)이니, 쪼잔하게 계산해보면 9㎞나 된다. 대표적인 중국식 과장으로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도 함께 인용되지만 삼천장의 백발에 비하면 애교다. 삼국지 서유기도 과장과 판타지 요소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읽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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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흔한 닭발 요리를 ‘봉황족(鳳凰足)’이라고 미화한 것에 이르면 중국식 과장은 단순히 외형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옛날 상서롭고 고귀한 존재의 상징으로 봉황을 창조해낸 것 못지않은 닭발의 과장이다.

최근 유력 서방 언론들과 기자회견을 한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CEO(75)의 화법에도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엿보였다.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제조업체이자 중국 IT업계의 선두 기업을 이끄는 그는 “트럼프는 위대한 대통령”이라며 “중국과 미국 간 무역 분쟁에서 화웨이는 참깨씨에 불과하다”고 극도로 자세를 낮췄다.

미국과 서방의 그 동맹국들로부터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화웨이의 처지를 감안한다 해도 공개 발언으로는 과도한 저자세다. 일각에서는 ‘은둔의 경영자’ 런정페이의 인터뷰 자체가 현 상황을 화웨이가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화웨이 장비 속에 깨알만 한 비밀 스파이칩이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미국에서 제기된 뒤 이 회사가 겪는 수난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달 CFO 겸 부회장인 그의 딸이 캐나다에서 체포됐고, 유럽지사 직원은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검거되기도 했다.

청대 옹방강은 일흔여덟 때 참깨에 천하태평(天下泰平) 넉 자를 썼다고 전해지지만 그것도 중국식 과장인지 모른다. 연매출 1000억달러 이상에 직원은 17만 명이 넘는 글로벌 기업 CEO가 참깨에 비유하며 미국을 향해 읍소하는 게 진정 다급해서인지, 이것도 과장의 제스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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